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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트 신조 (Canons of Dort, 1618-1619)          

 

1618년 11월 13일 화란의 도르트에서 화란 의회에 의해 교회 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이 회의에서 오늘날까지 화란의 표준 교리들 중의 하나로 알려진 도르트 신조(Canons of Dort)가 작성되는데 이 신조는 예정론과 이에 부수된 문제들에 대한 칼빈주의의 입장을 수정하여 인간의 자유의지를 천명하고자 했던 알미니우스파를 정죄하였습니다.

 

제네바 학파를 이끌던 칼빈의 수제자 베자가 확정한 '전택설적 예정론'에 반대하던 사람으로 라이덴 대학(Leiden University)의 교수 야곱 알미니우스(Jacob Arminius, 1560-1609)가 있었습니다. 1580년대에 베자에게서 배우던 알미니우스는 위켄보르케트와 함께 칼빈의 예정론을 반박하는 날카로운 질문을 자주 제기했습니다. 베자가 죽은 후, 알미누우스와 위켄보르케트의 활동은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되었는데, 알미니우스가 1609년에 갑작스럽게 죽게 됩니다. 이후 그의 추종자들이 스승의 입장을 정리하여 정통 칼빈주의에 대항하게 되는데, 1610년 알미니안들 43명은 예정론을 주장하는 정통파 입장에 반대하는 항변서(Remonstrance)를 위켄보르케트의 작성 하에 다음과 같은 주요 내용으로서 발표했습니다.

 

1. 하나님은 개인의 신앙과 불신앙의 예지에 기초하여 선택하시고 또한 유기하신다.

2.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해 죽으셨다.

3. 믿음과 선행에 하나님의 은혜가 반드시 필요하다.

4. 하나님의 은혜는 거절될 수 있다.

5. 중생자의 견인에 관하여는 좀더 연구할 여지가 있다.

 

이와 더불어 알미니안들은 화란 교회의 신조를 자신들의 주장에 따라 수정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철저한 칼빈주의자인 고마루스(Gomarus) 진영의 정통파에서는 즉각 '반항변서'(Counter-Remonstrance)를 냄으로써 자신들의 입장을 재천명하게 되어 당파간의 격렬한 논쟁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논쟁은 시간이 흐르면서 예정론 이외의 다른 문제들로도 번져서 뒤얽히게 되었습니다. 알미니우스파는 좀더 자유분방하고 관대한 교회, 국가의 감독을 받는 교회를 원했고 정통파는 이를 교회의 독립성에 대한 침해로 간주하였습니다. 이들의 대립은 당시 화란의 내전과 맞물려 더욱 혼란에 빠져들었습니다. 화란 대통령 마우리스(Maurice)는 정치적으로 정통파를 옹호했습니다. 도르트 회의는 이러한 상황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따라서 회의는 당연히 정통파 대표들이 압도하게 되었습니다. 올덴바르네펠트의 강력한 후원을 희구하던 알미니우스파들은 그들의 후원자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1618년 11월부터 1619년 5월까지 7개월간 154번의 정식상의 교회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교회회의에는 각지방 교회회의에서 선출된 대표들이 참석했습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독일의 칼빈주의 교회의 대표들도 고문으로 참석했습니다. 화란 의회는 또 고문으로 5명의 신학교 교수와 18명의 위원을 선임하여 정식 대표는 총 56명에 이르렀습니다. 회원들은 알미니우스파의 저작물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정통이 아니요, 성경의 가르침과 어긋난다고 결론짓게 됩니다. 그래서 알미니우스파의 견해에 반대하는 정통교리를 작성하였는데, 이를 가리켜 도르트 신조라고 하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인간의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2.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3. 제한된 속죄(Limited atonement)

4.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5.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이렇게 도르트 회의에서 결정된 위의 5대 신조는, 각 교리의 첫 자를 따서 일명 '튤립(TURIP) 교리'라고도 하는데, 화란 개혁교회가 생명과도 같이 여기는 신조로 채택되었습니다. (비록 도르트의 신조는 단지 4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신조는 다섯 가지 항론에 대항하여 편집되었기 때문에 항목상으로는 다섯 가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3번째와 4번째 편은, 이 둘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하여 하나로 합쳐서 '셋째와 넷째의 핵심 교리'라고 했습니다.) 각 편에는 긍정적인 개혁 교리의 주제를 포함하고 부정적인 부분으로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의 오신에 대한 결의를 포함해 놓은 도르트 신경은 모두 합해서 59개의 논설과 34개의 반론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도르트 신조는 한 마디로 말해서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된다'는 성경적 교리를 분명하게 확증한 것이요,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인 만큼, 인간의 어떠한 노력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의존한다'는 성경의 진리를 천명한 것입니다. 이 회의가 결정한 핵심 내용들은 이후에 '웨스트민스터 회의'에서 그대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상 이와 같은 알미니안주의의 주요 교리는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4세기에 어거스틴의 전적 타락에 반대한 펠라기우스주의와 6세기의 반(半) 펠라기우스주의(Semi-Pelagianism)의 주장과 동일 선상에 위치합니다. 따라서 알미니안주의와 칼빈주의의 차이는 형식상의 차이가 아니라 내용상의 차이입니다. 알미니안주의는 하나님과 인간의 죄와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서로 대립시킴으로 신인협력(神人協力)의 구원관을 가집니다. 반면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전적 무능력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도르트 회의는 기독교 교회사에 있어서 진행되어온 가장 주요한 논쟁이 재연된 것이라고 하는 의미를 갖기도 합니다. 알미니우스주의자들이 제출한 신앙 5개조가 도르트 회의에서 거부되었으나 그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알미니우스의 주장을 계속 발전시키고 전파하였습니다. 이후 이들의 주장은 서구 자유주의 신학의 기반이 되었으며, 한편으로는 실천적 경건운동으로 나타나, 후에 감리교회의 정신인 메소디즘(Methodism)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이렇게 역사적 개혁주의 교회의 정신은, 앞선 교회가 성경에 근거해서 형성해 낸 신앙고백의 정통성에 의거하여, 다시금 '개혁되어진 신앙고백'(Confession Reformed)을 이어내고, 그렇게 해서 교회는 자기 시대에서 나아가야 할 보다 더 성경적인 방향을 설정하고, 그래서 자체적으로 계속해서 교회를 보다 더 성경에 가깝게 개혁해 나가는 것(Reforming)에서 찾아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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