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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io: AM 1230
일요일 오전9시30분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성베드로스님

우리가 흔히 알메니안 주의라고 하는 알메니우스파의 시조격인 알메니우스(Jacobus Arminius)는 종교 개혁의 중요한 본산지인

화란 출신의 신학자였지만 예정론을 반대하여 인간은 자유의지로 성령의 역사를 저항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수도 있다는

'보편 속죄론'과  '신인 협동설'을 주장했다.

더구나 그의 사망 후에 그를 추종하던 제자 시몬 에피스코피우스는

부분 타락

조건적 선택

보편 속죄

가항력적 은혜

성도의 구원 박탈

등을 포함한 5개 항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 5개 항의 발표는 이후 1611년 화란의 개혁자들이 TULIP으로 역공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후 알메니안 주의자들과 개혁주의자들 사이에 논쟁이 계속되었고 급기야 화란 정부에서 1618년 도르트 회의를 열었는데

유럽 각국의 신학자들이 무려 153차에 걸친 회의 끝에 알메니안 주의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개혁주의 신학의 입장을 밝혔다., 즉

 

완전 타락 ( Total Depravity )

무조건적 선택  ( Unconditional Election )

제한 속죄 ( Limoited Atonment )

불가항력적 은혜 ( Irresistible Grace )

성도의 견인 ( Perseverance of the Saints )

등의 다섯 개혁주의 교리의 영문 첫 글자를 딴 ' TULIP'이 탄생하게 되었고, 이후 미국으로 건너 온 화란의 개혁주의자들이 정착하여 세운

미시간 주의 Grand Rapids City '캘빈 신학교'를 토대로 한 ' CRC 교단 '이 바로 우리 남가주 서머나 교회의 신앙적 뿌리인 것이다.

 

질문하신 것 중 두번째 사람인 칼 바르트는 계몽주의와 인본주의의 영향을 받은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본산이었던 독일에서

태어나고 공부했던 신학자였는데 우리가 흔히 신정통주의라고 알고있는 학자이다.

한국에서도 자유주의 신학자라고 평가를 받고 있는 학자지만 '신정통주의'라는 의미와 같이 그는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에서 탈피하여

1919년 그의 방대한 '로마서 주석'에서 당시 자유주의 신학에 대 반격을 가했다.

우리 서머나 교회의 이전 로마서 설교에서도 수 차례 바르트의 신학을 내용 비평 없이 자유주의의 편으로 평가한 면이 있지만 그를

완전한 자유주의 신학자로 보는 것은 무리이다.

오히려 당시 자유주의 신학자들에 의해 훼손된 성경의 권위를 회복하여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한 개혁주의 신학자이며,

그가 쓴 '교회 교의학'은 20세기 최고의 고전이며 그를 20세기 대표적 개혁주의자로 평가한다.

특히 그는 Westminster 신학교를 설립한 주역인, 자유주의로 오염되기 이전의 Princeton 신학교 출신인 Machen 교수에 의해서

자유주의 신학자로 분류된 것이 결정적으로 그의 신학적 성향의 평가 기준이 되었다.

 

김복진 목사님의 말씀처럼 저명한 신학자의 신학 사상, 그 중에서도 구원론을 논한다는 것은 너무나 방대하며 소모적 신학적 논쟁을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가이드를 받아서 스스로 공부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예전의 김성수 목사도 로마서 강해에서 말년의 칼 바르트가 서재의 모든 신학 서적을 치워버리고 성경 한 권만 남겨 놓았다고 한 말처럼

특정인의 설교, 특정인의 신학이 성도의 신앙을 좌우하지 않아야 한다.

 

             Sola Fide (오직 믿음)        Sola Gratia (오직 은혜)      Sola Scriptura (오직 성경)

 

종교개혁 당시의 세 가지 표어처럼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