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Radio: AM 1230
일요일 오전9시30분
 오직 은혜 오직 믿음 

기독교 세계관이란?

 

 

중생한 그리스도인으로써 성경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며 분별하는 지혜이며 이 근거에 의하여 드러나는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 자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롬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딤후3:16-17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스스로 판단하기에, 진정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기독교 세계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고민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세계관에 의해서 어떤 가치관이 형성되며 이 가치관이 그 사람의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드러나게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의 기독교 세계관에 의해서 가치관이 형성되고 그 결과로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세계관은 한 개인의 사고체계와 전 인생의 영역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신자나 불신자를 막론하고 무관심할 수가 없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중요하고 심도 있게 다루어서 올바른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기독교 이천 년을 돌아볼 때, 모든 성도들의 삶의 모습은 그들 나름대로의 기독교 세계관에 의해서 드러났던 것이다. 콘스탄틴 대제의 기독교에 대한 자유를 허락하기 이전까지는 그야말로 박해시기였다. 어떻게 그들은 카타콤에서 몇 달, 몇 년이 아닌 전 인생을 지내다가 그 지하 동굴 속에서 죽을 수 있었을까?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식량을 구하러 나갔다가 잡혀서 사자 밥이 되고 검투사들의 희생제물이 되는 등, 당시의 불신 위정자들에게 노리개 취급을 받으면서 죽어갔다.

또 그들의 주거환경은 스모그나 황사 정도는 비교할 수 없는 열악 그 자체였었다. 미로와 같은 설명키 어려운 그 환경의 동굴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시대를 잘못 태어나서였을까?

단지 개종한 그리스도인으로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랬는가?

그 곳에서, 그 당시에는 예수 믿는다는 것은 생사가 걸린 문제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예수 믿는다는 것을 대부분 화복에 걸고 있다면, 그때와 지금은 예수가 다르든지, 또는 그때 성도와 지금 우리가 다르든지, 뭐가 다르든지 다른 것만은 분명하다.

 

만약에 지금도 예수 믿는 것이 생사문제라면, 나 자신이 그리스도인의 삶과 복음에 대한 반응, 삶에 대한 태도가 어떻게 달라질까?

 

왜? 기독교 세계관을 시작하면서 전제로 다룬 부분을 기본으로, 기초로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지는 올바른 기독교 세계관을 위해서이다.

 

물론 개혁주의 입장이 아닌 측에서는 전제 자체를 부인까지 하는 입장(주장)도 기독교 안에 있으며, 사실 기독교라는 용어와 용례는 매우 좋지만 지금은 변질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단이나 사이비도 기독교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와 있고, 종교다원주의자, 타 종교에서도 그 의미와 내용을 다르게 취급하면서 사용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복음주의라는 울타리도 이제는 서로가 너무나 달라졌고 내용도 다르게 다루고 있다. 더 좁혀 개혁주의라는 울타리도 이제는 서로 같지않다. 곧 신 개혁주의나 순 개혁주의라는 이름들이 생겨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 바로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들만을 바라보면서, 기독교 자체를 부인한다면 그것은 철저한 실패하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볼 줄 아는 사람이며, 세계관을 가지고 있고, 또 사도 바울의 가치관과 그에 따르는 행동양식을 드러내 보이는 자들로 지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리스도인의 길이 많이 부담스럽고 힘들고 어려워도, 이 진리의 길을 가야하는 중생된 우리의 인생길이 아닌가? 누구나 지나온 인생길에 자긍심만을 갖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제부터라도 목표가 분명하게 보이는 이 길!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미”와 “아직”의 신분 상태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이 놀라움!

 

사실 중생되어 깨닫게 되기 전에는 몰랐던 것들 아닌가?

이전에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도 몰랐으며, 왜? 여자로, 남자로 태어났는지? 왜? 결혼하고 후손을 낳아야 하는지? 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 오늘도 주신 호흡으로 이 날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남보다 부유한 물질의 축복을 가진 자도 하나님께서 주신 이유를 깨달아야 하는지? 이렇게 많은 의구심을 하나도 풀지 못하면서 그냥 한 세상을 살아왔고 그대로 살아간다면, 나는 과연 중생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주님과 연합된 신분으로, 성령의 충만함, 인도하심으로 살아가야 할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광야의 땅에 존재하는 나의 의미를 깨닫고, 남은 인생의 삶의 목적과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올바른 기독교 세계관을 갖출 때, 이 땅이 천국을 경험하는 복을 누리며 늘 예수 그리스도께서주신 평강 속에서 성령님의 내재와 인도하심으로, 이 물질세계와는 차원이 다른 영적 세계와 함께 영생을 약속 받은 행복한 삶을 누릴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어서 오시옵소서, 아멘!

 

 

 

 

아래를 Click 하시면 3장으로 연결됩니다.

기독교 세계관 3. 기독교 세계관과 일반 세속 세계관에 관한 기본 전제

                        (기독교 세계관에 관한 그리스도인의 기본 전제)